시간의 먼지를 걷어낸 혁명: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복원

프롤로그: 우리는 '진짜' 색채를 마주한 첫 번째 세대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드농관, 붉은 벽면 사이로 19세기 낭만주의의 걸작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외젠 들라크루아의 1830년 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입니다. 
지난 2023년 10월부터 2024년 4월까지, 약 6개월간의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마치고 대중 곁으로 돌아온 이 작품은 우리가 알던 그 그림이면서, 동시에 전혀 다른 그림이기도 합니다. 

 루브르의 회화 부서 디렉터 세바스티앙 알라르(Sébastien Allard)는 이번 복원을 두고 "우리는 이 그림의 진짜 색채를 다시 발견한 첫 번째 세대"라고 단언했습니다. 1949년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이번 대규모 복원은 단순히 때를 벗기는 작업을 넘어, 화가가 캔버스에 담았던 '혁명의 온도'를 되살려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그 경이로운 변화의 기록을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8겹의 바니시, 그 누런 베일을 벗기다 

박물관을 자주 찾는 분들이라면 고전 회화 특유의 '누런 톤(Yellowish tone)'에 익숙하실 겁니다. 
이는 물감을 보호하기 위해 칠한 '바니시(Varnish)'가 시간이 지나며 산화된 결과입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덧칠해진 바니시 층만 무려 8겹에 달했죠. 
이 두꺼운 산화막은 들라크루아 특유의 차가운 청색과 강렬한 적색을 모두 칙칙한 갈색 톤으로 뭉개버리고 있었습니다. 

 복원가 베네딕트 트레몰리에르(Bénédicte Trémolières)와 로랑스 뮈니오(Laurence Mugniot)는 이 바니시 층을 현미경을 보며 아주 조심스럽게 제거했습니다. 
캔버스의 크기(2.6m x 3.25m)가 워낙 거대해 이동이 불가능했기에, 작업은 전시장인 몰리앙 홀(Salle Mollien) 내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꽉 막혀 있던 빛이 뚫리고 그림의 깊이감이 되살아났습니다. 
마치 창문을 닦아낸 뒤 바라보는 풍경처럼 말이죠.

반전의 발견: 여신의 드레스는 '노란색'이 아니었다
이번 복원에서 가장 충격적인 발견은 바로 그림의 주인공, '자유의 여신(마리안느)'의 의상 색깔입니다. 
그동안 많은 미술사 서적과 관람객들은 그녀가 '노란색 튜닉'을 입고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바니시의 변색이 만든 착시였죠. 

 복원팀이 산화된 층을 걷어내자 드러난 진실은 놀라웠습니다. 
그녀의 옷은 원래 '밝은 회색(Light Grey)'이었으며, 그 위에 은은한 금빛 터치가 가미된 색감이었습니다. 
이는 들라크루아가 의도한 고대 조각상 같은 숭고함을 더욱 부각합니다. 
또한, 칙칙했던 피부 톤이 맑아지면서 여신의 겨드랑이 털과 같은 세밀한 묘사까지 더욱 생생하게 드러나, 그녀가 단순한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투쟁의 현장'에 있음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휘날리는 삼색기: 파랑, 하양, 빨강의 리듬 

들라크루아는 색채의 마술사였습니다. 이번 복원으로 그 명성이 헛되지 않음이 증명되었습니다. 
특히 프랑스 혁명 정신을 상징하는 삼색기(Tricolor)의 '파랑, 하양, 빨강'은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리듬이 되었습니다. 

 복원 전에는 회색으로 보였던 하늘은 이제 '들라크루아 블루'라 불릴 만한 깊고 푸른빛을 되찾았고, 화약 연기의 '흰색'은 더욱 눈부시게 빛납니다. 
흥미로운 점은 복원가들이 그림 곳곳에서 발견한 '숨은 삼색'입니다. 
들라크루아는 깃발뿐만 아니라 군중의 옷, 하늘의 구름, 바닥의 돌틈 등 캔버스 전체에 미세한 파랑, 빨강, 흰색의 터치를 흩뿌려 놓았습니다. 
이는 화면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깃발처럼 펄럭이는 듯한 역동성을 부여합니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디테일: 소년과 낡은 신발 

바니시가 벗겨지자 그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조연'들의 서사도 되살아났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 속 '가브로슈'의 모티프가 된 것으로 알려진, 양손에 권총을 든 소년을 주목해 보세요. 
복원 전에는 그가 여신의 옆에 나란히 선 것처럼 보였지만, 명암이 뚜렷해지면서 그가 여신보다 한 발짝 '앞서' 달려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혁명의 미래인 아이들이 가장 앞장섰다는 비극적이면서도 용감한 은유입니다. 

 또한, 왼쪽 하단부 구석에 방치된 채 바닥 돌과 구분되지 않던 '낡은 가죽 신발(Savate)' 한 짝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누군가 벗어 두고 간, 혹은 싸우다 잃어버린 이 신발 한 짝은 혁명의 현장이 얼마나 긴박하고 처절했는지를 보여주는 슴슴하지만 강력한 장치입니다. 


 배경의 재발견: 파리의 연기와 노트르담

그림의 오른쪽 배경, 자욱한 화약 연기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두 탑.
복원 후 탑의 윤곽과 거리의 풍경이 더 명확하게 식별된다.

들라크루아는 배경 묘사에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복원된 그림의 오른쪽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욱한 화약 연기와 먼지 사이로 '노트르담 대성당'의 두 탑이 보입니다.
이전에는 그저 뿌연 얼룩처럼 보였던 부분이, 이제는 파리의 랜드마크로서 사건의 장소가 1830년의 파리 시내임을 명징하게 증명합니다.
화가는 차가운 톤의 물감 위에 붉은색과 주황색을 덧칠해, 포화 속에서도 타오르는 도시의 열기를 표현했습니다. 
복원 덕분에 우리는 들라크루아가 붓끝으로 쌓아 올린 공기의 질감, 매캐한 화약 냄새까지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200년 전의 자유가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말 

"내가 조국을 위해 직접 싸우지는 못했더라도, 최소한 조국을 위해 그림을 그릴 수는 있을 것이다." 
들라크루아가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남긴 말입니다. 

 1830년 7월 혁명의 뜨거운 함성은 200여 년이 지난 오늘, 복원된 색채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벗겨진 것은 단지 낡은 바니시뿐만이 아닙니다. 
박제된 명작이라는 고정관념을 벗고, 피 끓는 현실 참여 예술로서의 생명력을 되찾은 것입니다. 
혹시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루브르의 몰리앙 홀에 들러 이 그림 앞에 잠시 멈춰 서 보시길 권합니다. 
교과서 속의 작은 사진이 아닌, 압도적인 크기와 선명한 '프랑스의 색'으로 다가오는 자유의 여신이 여러분의 심장 박동을 조금 더 빠르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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