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보다 요리에 진심이었던 남자, 모네의 '노란 주방'에서 탄생한 미식 레시피
붓을 든 순간에도 그는 '오늘 점심'을 생각했다

빛의 화가, 인상주의의 아버지, 지베르니의 정원사.
클로드 모네를 수식하는 말은 차고 넘칩니다.
우리는 흔히 그를 캔버스 앞에 서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뉘앙스를 포착하려 애쓰는, 고뇌에 찬 예술가로 상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상상에는 결정적인 '맛'이 빠져 있습니다.
사실 모네는 붓을 든 순간에도 머릿속으로는 '오늘 점심에 갓 딴 버섯으로 크로켓을 해 먹으면 어떨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야말로 지독한 미식가였기 때문입니다.


모네의 일생은 가난과의 싸움이었지만, 그가 성공을 거두고 지베르니에 정착한 이후의 삶은 완벽하게 큐레이팅 된 '미식의 향연'이었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이나 메뉴를 짜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단순히 먹는 것을 즐기는 수준을 넘어, 그는 식재료의 원산지, 조리법, 그리고 식탁의 색감까지 관여하는 '푸드 디렉터'였습니다.
그의 작품 속 흐릿한 경계선들과 달리, 그의 요리 취향은 칼같이 명확하고 선명했습니다.


노란 주방: 모네가 설계한 미식의 무대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강렬한 색채에 압도당합니다.
특히 그의 '주방'과 '다이닝 룸'은 당시의 관습을 완전히 뒤엎는 혁명적인 공간이었습니다.
19세기의 주방이 대부분 어둡고 칙칙한 회색빛이었던 것에 반해, 모네는 자신의 식사 공간을 눈이 시릴 만큼 선명한 '크롬 옐로(Chrome Yellow)'로 칠했습니다.
마치 태양 빛을 집 안으로 그대로 퍼 온 듯한 이 공간은 그가 음식을 얼마나 신성하고 즐거운 것으로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노란 방에서 모네는 당대의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을 초대해 매일 점심 파티를 열었습니다.
르누아르, 세잔, 로댕 같은 거장들이 이 노란 식탁에 둘러앉아 와인을 마시며 예술과 인생을 논했습니다.
모네에게 있어 식탁은 또 하나의 캔버스였습니다.
노란 벽지와 파란색 식기, 그리고 그 위에 올라갈 붉은 고기와 초록 채소의 색감 조화까지 계산된, 완벽한 설치 미술이었던 셈이죠.

재미있는 점은 모네가 직접 요리를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지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꼼꼼하게 작성된 '조리 노트(Carnets de Cuisine)'를 통해 요리사에게 아주 구체적인 주문을 내렸습니다.
"오리 고기는 너무 익히지 말 것", "버섯은 반드시 지베르니 숲에서 아침에 딴 것일 것".
이 노트에는 오늘날의 미슐랭 셰프들도 감탄할 만한 레시피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지베르니 정원: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의 시초 

우리가 사랑하는 모네의 정원, 그 아름다운 수련 연못과 꽃밭은 사실 거대한 '식재료 창고'이기도 했습니다.
모네는 정원을 가꿀 때 심미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식탁에 무엇을 올릴 것인가'를 철저히 고려했습니다.
그는 채소밭(Le Potager)을 따로 두어 아스파라거스, 쥬키니, 각종 허브를 직접 재배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의 개념을 100년도 더 전에 실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과 정원 일, 그리고 점심 식사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특히 그는 버섯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직접 숲으로 나가 야생 버섯을 채취했고, 이를 활용한 '버섯 크로켓'은 그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였습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진한 버섯의 풍미가 터져 나오는 이 크로켓은 지베르니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가장 기대하는 요리였습니다.
모네의 레시피에 따르면, 이 크로켓은 버터와 크림을 아끼지 않고 넣어 묵직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모네의 식탁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는 것 

모네는 시간을 들여 식사하는 것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점심 식사는 보통 오전 11시 30분에 시작되어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고 합니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혀끝으로 느끼고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는 의식(Ritual)이었던 것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편의점 도시락이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현대인들에게, 모네의 식탁은 진정한 '럭셔리'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의 그림이 빛을 통해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붙잡으려 했다면, 그의 요리는 사라져 버릴 계절의 맛을 가장 황홀한 순간에 즐기려는 시도였습니다.
오늘 주말, 브런치 카페에 가는 대신 모네의 마음으로 식탁을 차려보는 건 어떨까요?
창문을 활짝 열어 빛을 들이고, 제철 버섯을 볶아보세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덧칠하듯, 접시 위에 맛을 쌓아 올리는 그 순간, 당신도 일상의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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