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갤러리현대, 민화(民畵)를 ‘가장 현대적인 전위’로 호명하다
침묵의 시대를 넘어, 소란스러운 욕망의 정원으로

026년 1월의 삼청동은 여전히 차가운 공기를 머금고 있지만, 갤러리현대 앞은 이른 아침부터 기묘한 열기로 들끓고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단색화의 금욕적이고 명상적인 미학을 세계 시장에 설파해 온 갤러리현대가, 
2026년의 문을 여는 첫 번째 기획전으로 ‘민화(民畵)’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일종의 선언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K-Art’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습관적으로 ‘비움의 미학’이나 ‘백색의 침묵’으로 답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 오래된 모범답안을 과감히 파기합니다. 
대신 조선 후기, 계급 질서의 균열 틈새로 쏟아져 나왔던 그 ‘소란스러운 생명력’과 ‘원색적인 욕망’을 21세기의 화법으로 재소환합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박물관 유리장 속에 박제된 민화를 꺼내 먼지를 털어내는 복원 작업이 아닙니다. 
오히려 민화가 태생적으로 품고 있던 ‘팝아트적 속성’—대중성, 장식성,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날카로운 풍자—을 현대의 디지털 매체, 설치 미술, 그리고 하이퍼리얼리즘 회화와 충돌시키는 거대한 실험장입니다.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이후, 세계 미술계가 한국 미술의 ‘다음 챕터’를 갈구하는 시점에서, 갤러리현대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낡은 슬로건 대신, ‘가장 세속적인 염원이 가장 동시대적인 예술이다’라는 새로운 테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을 압도하는 것은 형형색색의 에너지가 충돌하는 시각적 카타르시스입니다.
과거 민화가 무명 화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실용적인 기복(祈福)의 도구’였다면, 2026년의 작가들은 이를 ‘현대인의 불안과 욕망을 비추는 거울’로 치환합니다.
조선 시대 병풍 속에서 부귀영화를 상징하던 모란은 이제 자본주의의 화려한 스펙터클로,
잡귀를 쫓던 호랑이는 권력과 알고리즘의 감시망을 조롱하는 메타포로 변모했습니다.
이러한 재해석은 단순히 소재의 차용(Appropriation)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민화라는 장르가 지닌 ‘익명성’과 ‘복제성’이, 오늘날의 디지털 밈(Meme) 문화나 NFT 생태계와 얼마나 놀랍도록 닮아있는지를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갤러리현대는 이번 기획을 통해 19세기 조선의 길거리와 21세기 서울의 디지털 네트워크를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연결하며, 한국 미학의 뿌리가 단순히 ‘정적’인 것에만 있지 않음을 웅변합니다.





책거리(冊架圖), 지적 허영과 물신주의의 경계에서

이번 전시의 백미는 단연 전시장 중앙을 점유한 설치 작품과 미디어 아트가 결합된 ‘네오-책거리(Neo-Chaekgeori)’ 섹션입니다.
전통적으로 책거리는 선비의 방을 장식하며 학문에 대한 정진과 문방구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책거리는 조선 시대 그림 중 가장 투시도법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소유하고 싶은 값비싼 기물들을 나열해 놓은 ‘욕망의 쇼윈도’이기도 했습니다.

참여 작가들은 이 지점을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캔버스 대신 OLED 패널로 구현된 책가도에는 붓과 벼루 대신 최신형 스마트 디바이스, 한정판 스니커즈, 암호화폐의 실시간 차트가 그려진 오브제들이 역원근법(Reverse Perspective)으로 배치되어 부유합니다.
이는 200년 전, 청나라에서 수입된 도자기와 시계에 매혹되었던 조선 양반들의 허위의식이, 오늘날 ‘명품 언박싱’과 ‘플렉스(Flex)’ 문화로 고스란히 계승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작가는 이를 비판하기보다, 인류의 본능적인 ‘수집벽’과 ‘과시욕’을 긍정하고 이를 유희적인 팝아트의 문법으로 풀어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색채의 운용입니다.
전통 민화의 오방색(五方色)은 네온 컬러와 형광 안료로 대체되어 눈을 찌를 듯한 강렬함을 선사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기물들이 서로 겹치지 않게 평면적으로 배치된 구도는 여전히 한국적인 조형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구의 입체파(Cubism)가 도달하고자 했던 다시점(Multi-viewpoint)의 미학이 이미 우리 전통 안에 내재되어 있었음을 상기시킵니다.

또 다른 섹션인 ‘작호도(鵲虎圖)의 전복’에서는 풍자의 정신이 극대화됩니다.
까치와 호랑이가 등장하는 작호도는 본래 나쁜 기운을 막고 좋은 소식을 부르는 그림이었으나, 동시에 어리석은 호랑이(탐관오리)를 조롱하는 까치(민중)의 구도를 통해 지배층을 풍자하는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2026년의 작호도에서 호랑이는 더욱 우스꽝스럽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혹은 과도하게 비대해진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한 중견 회화 작가는 호랑이의 털 한 올 한 올을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묘사하되, 그 호랑이의 눈을 픽셀이 깨진 디지털 글리치(Glitch) 형태로 표현하여, 권위의 허상성을 폭로합니다.

까치 역시 전통적인 새의 형상이 아닌, 드론(Drone)이나 CCTV 카메라의 형상을 은유적으로 차용하여 현대 사회의 감시 시스템을 꼬집습니다.
이러한 현대적 알레고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에 쫓기고, 무언가를 갈망하며, 보이지 않는 계급의 사다리 아래서 서성이고 있음을 자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민화, K-아트의 오래된 미래 

갤러리현대의 이번 2026년 개막 전시는 단순히 ‘전통의 현대화’라는 상투적인 수사로 가둘 수 없는 깊이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한국 미술의 DNA 속에 흐르는 ‘해학’과 ‘파격’의 유전자를 정밀하게 타격하여 깨운 사건입니다.

단색화가 한국인의 정신적 내면과 절제를 보여주었다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민화는 한국인의 뜨거운 생명력과 현세적 욕망을 긍정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축이 공존할 때, 비로소 K-아트는 완전한 입체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관람을 마친 후 갤러리를 나서는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습니다.
화려한 색채와 위트 있는 도상(Iconography)에 매혹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깔린 ‘간절함’을 읽어내십시오.
200년 전 무명 화가가 종이 위에 호랑이를 그리며 가족의 안녕을 빌었던 그 마음과,
2026년의 작가가 디지털 캔버스 위에 욕망의 기호들을 띄워 보내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그 지점, 바로 그곳에 이번 전시가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하고도 서늘한 위로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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