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이방인: 야요이 쿠사마의 2달러짜리 반란

1966년 6월, 물의 도시 베네치아. 전 세계 미술계의 시선이 제33회 베네치아 비엔날레로 쏠려 있던 그해 여름, 이탈리아관 앞마당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공식 초대 명단에 이름조차 없던 한 동양인 여성이 잔디밭을 점거한 것입니다. 

 그녀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금색 기모노를 입고 은색 오비(허리띠)를 두른 채, 마치 외계에서 불시착한 여사제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발밑에는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1,500개의 은색 공들이 끝도 없이 깔려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색 물결처럼 일렁이는 이 기묘한 풍경 속에서, 그녀는 지나가는 관람객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당신의 나르시시즘을 팝니다. 단돈 2달러예요." 




 초대받지 못한 손님과 은밀한 후원자 

 당시 37세였던 야요이 쿠사마는 뉴욕 미술계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아웃사이더'였습니다. 
남성 중심적인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하던 시절, 동양에서 온 여성 작가가 설 자리는 좁다 못해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녀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정식으로 초청받지 못했지만, 그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무모해 보이는 게릴라성 전시 뒤에 거장 루초 폰타나(Lucio Fontana)의 은밀한 지원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공간주의'의 창시자이자 캔버스를 찢는 파격으로 유명했던 폰타나는 쿠사마의 재능을 알아본 몇 안 되는 이해자였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쿠사마에게 제작비와 여비를 지원하며 그녀의 베네치아 행을 도왔다고 합니다. 
비엔날레 위원장으로부터 '전시장 밖에서의 설치'를 구두로 허락받은 것도 폰타나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되곤 합니다. 




 나르시시즘을 팝니다: 예술인가, 장사인가 

 쿠사마가 잔디밭에 설치한 작품의 이름은 〈나르시시즘 정원(Narcissus Garden)〉이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죽음을 맞이했듯, 관람객들은 1,500개의 거울 공에 비친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쿠사마는 그 옆에 'NARCISSUS GARDEN, KUSAMA'와 'YOUR NARCISSIUM [sic] FOR SALE'이라는 팻말을 세웠습니다. 
('NARCISSISM'의 철자를 일부러 틀리게 적은 듯한 'NARCISSIUM'은 묘한 위트마저 느껴집니다.) 

 그녀는 마치 시장의 상인처럼 공 하나를 집어 들고 1,200리라, 당시 환율로 약 2달러에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상한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미술계 인사들이 이 '저렴한 예술'을 사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공을 사는 행위는 곧 자신의 허영심을 사는 행위와 다를 바 없었죠. 
쿠사마는 예술이 고가에 거래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가는 세태를, 가장 노골적인 '장사' 퍼포먼스로 조롱한 것입니다. 

 "이건 핫도그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판대가 아닙니다!" 

 비엔날레 주최 측은 경악했습니다. 
신성한 예술의 전당에서 노골적으로 물건을 파는 행위는 그들이 보기에 천박한 상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주최 측은 "이곳은 핫도그를 파는 곳이 아니다"라며 판매를 즉각 중단시켰습니다. 
쿠사마는 쫓겨나다시피 판매를 멈춰야 했지만, 이미 그녀의 의도는 성공한 뒤였습니다. 
'초대받지 못한 동양인 여성'이 세계 최고의 미술 축제 한복판에서 예술의 상업성을 폭로하고, 그 위선을 비웃어준 셈이니까요. 




 긴 어둠을 지나, 여왕의 귀환

 이 사건 이후 쿠사마는 뉴욕에서 더욱 과격한 누드 퍼포먼스를 이어갔지만, 정신적인 고통과 생활고는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았습니다. 결국 1973년, 그녀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한때 스캔들을 일으켰던 미치광이 작가' 정도로 기억하며 서서히 잊어갔습니다. 

 하지만 반전은 27년 뒤에 일어났습니다. 
1993년, 제45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일본관 대표 작가로 야요이 쿠사마가 선정된 것입니다. 
1,500개의 공을 깔아놓고 쫓겨났던 그 '이방인'이, 이제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거장이 되어 금의환향한 것이죠. 
그녀는 일본관에서 작은 호박 조각들로 가득 찬 거울 방을 선보였고, 전 세계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열광했습니다. 
1966년의 무단 침입이 '절규'였다면, 1993년의 귀환은 완벽한 '승리'이자 '복수'였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우리들 

 오늘날 〈나르시시즘 정원〉은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초청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1966년의 플라스틱 공들은 이제 매끄러운 스테인리스 스틸로 바뀌었고, 더 이상 개당 2달러에 팔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관람객이 그 은색 공 앞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리는 풍경은, 60년 전 쿠사마가 꿰뚫어 보았던 인간의 본성을 다시금 증명하는 듯합니다. 

 초대받지 못했던 37세의 쿠사마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예술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예술을 향유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번쩍이는 은색 공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우리를 비출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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