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리히텐슈타인을 바꾼 아들의 도발, Look Mickey

 물감 냄새 진동하던 1960년, 붓을 든 남자의 고뇌 

 1960년, 뉴욕의 미술계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이 흩뿌려놓은 거친 물감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이른바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시대였죠. 
예술가라면 마땅히 캔버스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처절하게 폭발시켜야 했고, 고상하고 심오한 철학을 담아내야만 '진짜 예술'로 인정받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30대 후반의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역시 그 거대한 흐름 속에 갇혀 있던 수많은 화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틈틈이 추상화 작업을 했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는 '아류'였습니다. 
아무리 붓을 휘둘러도 거장들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었고, 평단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습니다. 
그의 캔버스 위에는 시대의 유행을 쫓는 불안한 붓질만이 가득했죠.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른 채, 그저 '예술가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거실에서 날아든 결정적 한 방: "아빠는 못 그릴걸?" 

 그러던 어느 날, 리히텐슈타인의 운명을 뒤바꾼 사건은 화실이 아닌 거실 바닥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아들 미첼(Mitchell)이 만화책 한 권을 들고 아빠에게 달려왔습니다. 
그 책은 디즈니의 《도널드 덕: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서(Donald Duck: Lost and Found)》였습니다. 

 아들은 책 속의 한 장면, 도널드 덕이 낚싯바늘에 자신의 옷자락이 걸린 줄도 모르고 '대어를 낚았다'며 흥분하는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러고는 붓을 든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한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장담하는데, 아빠는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진 못할 거야, 그치?"
(I bet you can't paint as good as that, eh, Dad?) 

 아들의 눈에 비친 아빠의 추상화는 그저 '알아볼 수 없는 낙서'에 불과했고, 오히려 눈앞의 도널드 덕이 훨씬 더 훌륭한 그림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웃어넘겼을 이 아이의 도발이, 정체되어 있던 리히텐슈타인의 뇌리에 번개처럼 꽂혔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가장 저급하다고 여겨지는 '만화'가, 가장 고상한 '회화'의 영역으로 들어온다면 어떨까? 
이것은 그동안 그를 짓누르던 추상 표현주의의 엄숙주의를 깨뜨릴 완벽한 무기였습니다. 




 Look Mickey: 위대한 농담의 시작 

 아들의 도발에 자극받은 리히텐슈타인은 즉시 캔버스 앞에 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정을 실어 붓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만화책의 한 장면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팝 아트의 신호탄이 된 기념비적인 작품, <이것 좀 봐 미키(Look Mickey, 1961)>의 탄생 순간이었습니다. 

 그림 속 도널드 덕은 자신의 엉덩이를 낚고서 "이것 좀 봐 미키, 큰 놈을 낚았어!"라고 외치고 있고, 미키 마우스는 입을 가린 채 킬킬대고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은 이 유치한 상황을 121.9cm x 175.3cm의 거대한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그는 붓자국(Brushstroke)을 지우는 것을 넘어, 인쇄물에서나 볼 법한 거친 망점(Ben-Day dots)을 캔버스에 하나하나 그려 넣기 시작했습니다. 
개의 털을 빗질하는 브러시에 물감을 묻혀 찍거나, 구멍 뚫린 판을 이용해 기계적인 인쇄 과정을 수작업으로 재현해낸 것입니다. 




 저급함이 예술이 되는 순간 

 이 그림은 철저히 '반(反)예술적'이었습니다. 
당시 예술가들이 숭배하던 독창성, 감정, 심오함을 모두 조롱하는 듯했으니까요. 
그는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만을 사용했고, 검은 테두리를 두꺼운 선으로 마감하여 평면성을 강조했습니다. 
예술가의 손맛을 최대한 배제하고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차가운 이미지를 만든 것입니다. 

 리히텐슈타인은 그림을 완성한 후에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예술로 받아들여질까? 아니면 그저 저급한 장난으로 치부될까? 
그는 전위 예술가인 동료 앨런 카프로(Allan Kaprow)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었고, 카프로는 즉시 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았습니다. 
"폴 세잔(Paul Cézanne) 같은 거장보다 이 껌 포장지 같은 그림이 미술 교육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평가는 리히텐슈타인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레오 카스텔리와의 만남, 그리고 전설의 시작 

 1961년 가을, 리히텐슈타인은 떨리는 마음으로 그림을 차에 싣고 당시 뉴욕 미술계의 큰손,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의 갤러리를 찾아갑니다. 
카스텔리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을 보고 이미 팝 아트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었지만,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을 보자마자 전율을 느꼈습니다. 
워홀의 그림보다 더 기계적이고, 더 차가우며, 더 완벽하게 '만화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카스텔리는 그 자리에서 리히텐슈타인의 개인전을 제안했고, 1962년 열린 그의 첫 개인전은 개막도 하기 전에 모든 작품이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것은 예술의 종말"이라며 혹평을 쏟아냈지만, 대중과 컬렉터들은 열광했습니다. 
아들의 비웃음에서 시작된 그림 한 장이, 그를 무명 화가에서 미국 팝 아트의 거장으로 단숨에 끌어올린 것입니다. 




 에필로그: 엉뚱한 곳에서 낚아 올린 '대어' 

 그림 속 도널드 덕은 자신이 잡은 것이 자신의 옷자락인 줄 모르고 "대어를 낚았다"며 기뻐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리히텐슈타인은 정말로 '대어'를 낚았습니다. 
그는 가장 가벼운 소재로 가장 무거운 예술 권력을 뒤집었고,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때로는 도널드 덕의 낚시와 닮아 있습니다. 
거창하고 심오한 곳에서 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정작 인생을 바꿀 결정적인 힌트는 아들의 짓궂은 농담이나 굴러다니는 만화책처럼 아주 사소하고 엉뚱한 곳에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혹시 당신도 너무 먼 곳만 바라보며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지는 않나요? 
고개를 돌려 당신의 '발밑'을 보세요. 그곳에 당신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줄 위대한 영감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내 그림이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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