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성전의 총성: 2,500억 원짜리 마릴린 먼로가 탄생한 순간

 1964년의 뉴욕, 맨해튼 동쪽 47번가. 허름한 건물의 4층 문을 열면 마치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듯한 기묘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벽과 천장, 심지어 파이프 배관까지 온통 은박지(aluminum foil)와 은색 페인트로 뒤덮인 이곳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전설적인 작업실, '팩토리(The Factory)'였습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몽환적인 록 음악이 흐르고, 당대 가장 힙하다는 예술가, 드래그 퀸, 마약 중독자, 그리고 슈퍼스타들이 밤낮없이 드나들던 이 은빛 성전에서 현대 미술사상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붓과 물감이 아닌, 화약과 납탄이 만들어낸 예술이자 훗날 2,5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가치를 만들어낸 '총격 사건'이었습니다. 



 어느 나른한 가을 오후, 팩토리의 문을 열고 한 여성이 들어섭니다. 
그녀의 이름은 도로시 포드버(Dorothy Podber). 
거친 가죽 재킷을 걸치고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장갑을 낀 채, 거대한 그레이트 데인 견(犬)을 대동한 그녀의 등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퍼포먼스 같았습니다. 
당시 팩토리의 사진작가였던 빌리 네임(Billy Name)의 친구이기도 했던 그녀는 평소에도 기행을 일삼기로 유명한 '문제적 인물'이었죠. 

 그녀의 시선이 작업실 한구석에 쌓여 있던 캔버스들에 꽂혔습니다. 
앤디 워홀이 막 완성한 마릴린 먼로의 실크스크린 초상화들이었습니다. 
빨강, 주황, 밝은 파랑, 그리고 세이지 블루(Sage Blue) 색상의 배경을 가진 네 점의 그림이 벽에 기대어 겹쳐져 있었습니다. 
포드버는 워홀에게 특유의 시크한 표정으로 묻습니다. 

 "앤디, 내가 저 그림들을 좀 '촬영(Shoot)'해도 될까?" 




 영어 단어 'Shoot'이 가진 중의성, 이것이 비극이자 희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워홀은 당연히 그녀가 카메라로 그림을 '찍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이지(Sure)"라고 답했죠. 워홀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포드버는 천천히 검은 장갑을 벗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가방에서 나온 것은 카메라 렌즈가 아니었습니다. 
차가운 금속성 광택을 뿜어내는 소형 리볼버 권총이었습니다. 

 팩토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인 그 찰나, 정적을 깨고 귀를 찢는 듯한 총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탕!'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은 겹쳐져 있던 네 점의 캔버스를 단숨에 관통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총알은 그림 속 마릴린 먼로의 양 미간 정중앙, 마치 인도의 빈디(Bindi)가 찍히는 그 신성한 위치를 정확히 꿰뚫었습니다. 
네 명의 마릴린 먼로가 동시에 이마에 총상을 입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앤디 워홀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습니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그였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명백한 폭력 행위 앞에서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죠. 
워홀은 훗날 이 사건을 회상하며 공포감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즉시 빌리 네임을 통해 포드버에게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아 달라"고 전했고, 그녀를 팩토리에서 영구 추방했습니다. 
워홀에게 예술은 도발적일 수 있어도, 현실의 폭력이 개입되는 것은 원치 않았던 선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의 역사는 이 지점에서 뒤틀리며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킵니다. 
총에 맞은 네 점의 작품은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워홀은 캔버스의 구멍을 메우고 색을 덧칠해 복원했습니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복원이 아니라, 총알이 지나간 자리에 미묘한 흔적이 남은 채로 말이죠. 
그리고 이 작품들에는 '샷(Shot)'이라는, 사진을 찍다와 총을 쏘다의 의미가 기묘하게 결합된 접두사가 붙게 됩니다. 
, , , 그리고 이 그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2022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 미술계의 이목이 한 작품에 집중되었습니다. 
바로 그날의 총격 사건에서 살아남은(혹은 그로 인해 다시 태어난) 이었습니다. 
도로시 포드버의 총알이 관통했던 바로 그 작품입니다. 

 경매사의 봉이 내려쳐지는 순간, 낙찰가는 무려 1억 9,500만 달러. 한화로 약 2,5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이는 20세기 미술 작품 중 공개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흠집 하나 없는 깨끗한 작품보다, 광기 어린 폭력의 흔적을 품은 작품이 더 비싼 값에 팔리다니 말입니다. 

 평론가들은 이 현상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습니다. 
마릴린 먼로라는 비운의 스타가 겪은 삶의 고통과 비극적 죽음이, 그림에 박힌 총알 자국과 오버랩되면서 작품에 더 깊은 서사를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색채 뒤에 숨겨진 죽음의 그림자, '바니타스(Vanitas: 인생무상)'의 현대적 변주가 완성된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겹쳐져 있던 다섯 점의 마릴린 중 가장 뒤에 있었거나 혹은 따로 떨어져 있어서 총을 맞지 않았던 (터키옥색 마릴린)은 'Shot' 시리즈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 작품 역시 엄청난 고가이지만, '총 맞은 마릴린'들이 갖는 그 드라마틱한 아우라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상처가 훈장이 되고, 파괴가 창조의 가치를 더하는 현대 미술 시장의 냉혹하고도 매혹적인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도로시 포드버는 이후에도 자신의 기행을 멈추지 않았고, 예술계의 이단아로 살다가 200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쏜 총알이 훗날 워홀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중 하나로 만들 줄 알았을까요? 
아마도 그녀는 "그게 내 예술이었어"라고 쿨하게 말하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을지도 모릅니다. 
앤디 워홀의 은 단순한 초상화를 넘어, 1960년대 뉴욕의 광기와 예술, 그리고 우연이 빚어낸 영원한 드라마로 남게 되었습니다.

앤디워홀, 팝아트, 현대미술, ShotMarilyns, 마릴린먼로, 도로시포드버, 팩토리, 미술경매, 크리스티, 예술비화

로그인 후 추천을 눌러주시면 작성자에게 커뮤니티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댓글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