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태양': 절규 너머, 삶을 찬미하는 빛의 교향곡

에드바르트 뭉크, 우리에게는 영원히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절규’의 화가로 기억되는 이름입니다.

핏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귀를 막고 흔들리는 그의 모습은 현대인이 겪는 불안의 아이콘이 되었죠.
하지만 만약 뭉크가 평생 어둠 속에만 갇혀 살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진실일 뿐입니다. 



오늘 소개할 그의 걸작, <태양(The Sun)>은 절망의 끝에서 그가 길어 올린 가장 눈부신 희망의 증거이자, 어둠을 뚫고 나온 한 인간의 위대한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1908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정신병원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뭉크는 신경쇠약과 알코올 중독, 그리고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던 환각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였습니다.
“내 몸은 썩어가고 있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스스로 병원을 찾게 됩니다. 
수 개월간의 치료와 요양. 그 시간은 뭉크에게 단순한 휴식이 아닌, 예술 인생의 2막을 여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술을 끊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뭉크는 노르웨이의 작은 해안 마을 ‘크라게뢰(Kragerø)’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크라게뢰의 바다는 ‘절규’ 속의 그 불길한 피요르드와는 달랐습니다. 
매일 아침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은 날카로운 신경을 긁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만물을 깨우는 위대한 에너지 그 자체였습니다. 
뭉크는 이곳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찬미하는 ‘비탈리즘(Vitalism)’에 깊이 심취하게 됩니다. 
죽음과 질병, 이별만을 그리던 그의 붓끝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 바로 오슬로 대학 강당(Aula)을 장식하고 있는 대작, <태양>입니다. 

<태양>을 마주하는 순간, 관람객은 마치 거대한 폭발을 목격하는 듯한 충격에 휩싸입니다. 
캔버스 정중앙에 위치한 태양은 단순한 원형의 천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빛의 탄환이며, 우주를 향해 포효하는 에너지의 심장입니다. 
뭉크는 태양의 빛을 표현하기 위해 튜브에서 물감을 바로 짜낸 듯한 원색의 노랑, 주황, 파랑을 과감하게 사용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그림이 지극히 ‘과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종교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태양에서 뻗어 나오는 직선적인 광선들은 마치 물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빛의 파장처럼 정확하고 강력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빛이 닿는 바위와 바다는 마치 신의 축복을 받는 제단처럼 성스럽게 느껴집니다. 
뭉크에게 태양은 어두운 밤(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물리치는 구원자이자, 과학과 종교를 아우르는 절대적인 진리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이 걸작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1911년, 오슬로 대학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강당 벽화 공모전이 열렸을 때, 보수적인 비평가들과 교수들은 뭉크의 그림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뭉크의 거친 붓 터치와 파격적인 색감이 신성한 배움의 전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이건 미완성이다", "그냥 스케치일 뿐이다"라는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뭉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자신의 사활을 걸었습니다. 그는 오직 이 벽화를 위해 무려 수백 점의 스케치와 습작을 그렸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야외 아틀리에에 거대한 가벽을 세워놓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이 태양이 꼭 필요하다네." 

결국 기나긴 논쟁 끝에 1916년, 뭉크의 <태양>은 오슬로 대학 강당의 정면 벽에 당당히 걸리게 됩니다. 
 그림의 구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디테일이 보입니다. 
화면 하단에 검고 거친 바위들이 보이시나요? 이것은 뭉크가 머물던 크라게뢰의 해안가 풍경이기도 하지만, 상징적으로는 인간이 겪는 시련과 고난, 그리고 세속의 무거움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위로 떠오른 태양 빛은 이 모든 어둠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강력합니다. 
빛은 바위 틈새 하나하나를 파고들며, 차가운 돌덩이마저 따뜻하게 데우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 뭉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태양을 보았다. 그러자 현기증이 나고 눈앞이 하얘졌다." 그가 느꼈던 그 강렬한 현기증은 병적인 어지러움이 아니라, 생명의 경이로움 앞에서 느낀 황홀경이었을 것입니다. 

 <태양>은 뭉크 예술의 완벽한 대칭점입니다. <절규>가 인간 내면으로 침잠하여 고통을 토해낸 것이라면, <태양>은 그 내면을 뚫고 나와 외부 세계, 즉 우주와 자연을 향해 손을 뻗은 결과물입니다. 
이제 뭉크를 떠올릴 때, 귀를 막고 비명 지르는 남자만을 기억하지 말아주세요. 
그 비명이 멈춘 자리, 고개를 들어 찬란한 빛을 정면으로 응시했던 한 예술가의 눈부신 아침도 함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뭉크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남기고 싶었던 위로의 메시지일 테니까요.

뭉크,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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