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미소, 전설이 되다: 1911년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전말

오늘날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살 데 제타(Salle des États)'는 언제나 북새통입니다. 

수백 명의 인파가 스마트폰을 높이 치켜들고, 방탄유리 너머의 작은 여인을 향해 셔터를 눌러댑니다. 바로 '모나리자'입니다. 
우리는 그녀를 예술의 정점이자 인류 최고의 명작이라 추앙하지만, 사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그녀의 위상은 지금과 사뭇 달랐습니다. 
르네상스의 걸작 중 하나 정도로 여겨졌을 뿐, 대중적인 아이콘은 아니었죠. 

 그녀가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 빈치의 붓터치가 아닌, 1911년 어느 여름날 발생한 '희대의 실종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빈 벽을 보러 사람들이 줄을 서고, 피카소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월요일 아침, 미소가 사라지다 

 1911년 8월 21일 월요일 아침, 루브르는 휴관일이라 고요했습니다. 
경비원들은 청소를 하거나 시설을 점검하고 있었죠. 
그리고 다음 날인 화요일 아침, 화가 루이 베루(Louis Béroud)는 모나리자를 스케치하기 위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주한 것은 그림이 아닌, 텅 빈 벽에 박힌 네 개의 철제 고리뿐이었습니다. 

 베루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떼어갔나 보군"이라며 경비원에게 농담을 건넸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림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확인 결과, 사진팀은 그림을 가져간 적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루브르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박물관장은 해고되었고, 프랑스 국경은 즉시 봉쇄되었습니다. 
파리 경찰 60명이 투입되어 루브르의 방 1,000개를 샅샅이 뒤졌지만, 남은 건 계단 구석에 버려진 액자와 유리뿐이었습니다. 




 빈 벽을 향한 열광, 그리고 엉뚱한 용의자들 

 역설적이게도 모나리자가 사라지자, 그녀는 전보다 훨씬 더 유명해졌습니다. 
신문들은 연일 대서특필했고, '사라진 미소'를 보기 위해 오히려 관람객이 폭주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림이 없는 텅 빈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거나 꽃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 같은 지식인들도 이 '공허'를 목격하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하니, 실로 기이한 풍경이었습니다. 

 수사가 난항을 겪던 중, 경찰은 뜻밖의 인물들을 용의선상에 올립니다. 
바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화가 파블로 피카소였습니다. 
아폴리네르의 비서가 루브르에서 조각상을 훔친 전력이 있었고, 피카소가 그 장물을 샀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졸지에 '국제 미술품 절도단'으로 몰린 두 젊은 예술가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며 떨었습니다. 
피카소는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법정에서 친구 아폴리네르를 모른 척하기까지 했죠. 
물론 그들은 모나리자 도난과는 무관했기에 풀려났지만, 이 해프닝은 사건을 더욱 미궁 속으로 빠뜨렸습니다. 




 범인은 바로 옆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요. 범인은 국제적인 범죄 조직도, 전위적인 예술가도 아니었습니다. 
범인은 루브르에서 유리 가공 업무를 담당했던 이탈리아인 노동자, 빈센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였습니다. 

 그의 범행 수법은 너무나 단순해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는 일요일 밤 박물관 비품 창고(빗자루 벽장이라는 설도 있습니다)에 숨어 있다가, 월요일 아침 박물관이 텅 빈 틈을 타 그림을 떼어냈습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액자와 유리를 분리한 뒤, 작업복인 흰 가운 속에 그림을 숨겨 유유히 걸어 나갔습니다. 
그는 훔친 모나리자를 파리의 허름한 아파트 트렁크 가방 속에 2년 동안이나 처박아 두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명화가 곰팡내 나는 좁은 방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레오나르도의 귀환 

 2년 뒤인 1913년, 피렌체의 미술상 알프레도 제리에게 '레오나르도'라는 서명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나폴레옹에게 약탈당한 이탈리아의 보물을 조국에 돌려주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페루자는 그림을 들고 피렌체로 향했고, 미술상과 우피치 미술관장은 페루자가 묵고 있던 호텔(트리폴리-이탈리아 호텔)에서 그림을 확인했습니다. 

 침대 밑 가방에서 꺼낸 널빤지 뒤에는 루브르의 공식 인장이 선명했습니다. 
진짜 모나리자였습니다. 페루자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지만, 이탈리아 법정에서는 "애국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그를 영웅시했기에 그는 7개월이라는 짧은 형량을 살고 풀려났습니다. 
(사실 모나리자는 약탈품이 아니라 다 빈치가 프랑스 왕에게 합법적으로 판 그림이었지만요.) 




 모나리자는 이탈리아 전역을 돌며 고별 전시를 마친 뒤, VIP 대접을 받으며 루브르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타전되었고, 2년 동안 신문 1면을 장식했던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전 인류가 루브르로 쇄도했습니다. 

 결국 모나리자를 신비로운 미소의 여신으로 만든 건, 다 빈치의 천재성 위에 덧입혀진 '도난과 실종'이라는 드라마였습니다. 
예술 작품이 갖는 아우라는 때로는 작품 그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인간들의 욕망과 이야기로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나리자의 미소 속에는, 그녀를 코트 속에 숨겨 달아났던 한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섞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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